‘지록위마(指鹿爲馬)’는 문자 그대로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짧은 표현에는 엄청난 권력의 위선과 진실 왜곡의 본질이 담겨 있다. 이 사자성어는 진시황 사후 권력을 잡은 환관 조고가 황제를 시험하고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거짓말을 강요한 사건에서 유래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분명히 ‘사슴’임에도 불구하고, 목숨이 두려워 ‘말’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글에서는 지록위마의 유래와 고문헌 속 의미, 현대 사회에 만연한 진실 왜곡과 집단 동조 심리,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진실을 지키기 위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함께 깊이 있게 살펴본다.
1. 지록위마(指鹿爲馬)의 문자적 의미
指(지) | 가리키다 |
鹿(록) | 사슴 |
爲(위) | ~이라고 여기다 |
馬(마) | 말 |
직역하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라는 뜻이다.
실제로는 분명히 사슴인데, 권력을 가진 사람이 이를 말이라고 우기고,
주변 사람들마저 그 말에 동조하는 상황을 풍자한다.
이 말은 현재에도 “거짓을 진실로 조작하는 것”,
또는 “권력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는 현상”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2. 유래 이야기: 진시황 사후의 조고와 호해
지록위마의 유래는 중국 역사서 『사기(史記)』 「진시황 본기」 및 「조고열전」에 실려 있다.
진시황이 죽은 후, 그의 막강한 권력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시 시황제의 신임을 받던 환관 조고(趙高)는 황제의 유언을 숨기고,
정통 후계자인 부소(扶蘇)를 제거하고, 무력한 아들 호해(胡亥)를 즉위시킨다.
호해는 어려서부터 정치 경험이 부족했고, 조고는 그런 그를 앞세워 실질적인 권력을 독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고는 자신의 입지를 시험하고자 했다.
그는 신하들 앞에 사슴을 끌고 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폐하, 이 말이 아주 훌륭한 종자입니다.”
호해는 당황하며 “이건 말이 아니라 사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조고는 웃으며 “그렇다면 신하들에게 물어보자”고 말했다.
당시 신하들 중 일부는 “예, 말입니다”라고 대답했고,
일부는 “이건 분명 사슴입니다”라고 진실을 말했다.
조고는 ‘사슴이라 말한 자’들을 모두 몰래 색출해 제거했다.
이 사건 이후 궁중과 조정에서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진실보다 권력의 말이 더 중요한 시대, 그것이 바로 지록위마의 진짜 무서움이다.
3. 고문헌 인용 및 해석
『사기(史記)』 「조고열전」 중
「趙高欲為亂,恐群臣不聽,乃先設驗,持鹿獻於二世,曰:‘馬也。’二世笑曰:‘謂鹿為馬邪?’問左右,或默,或言馬以阿高,或言鹿。趙高因陰中諸言鹿者以法。」
해석:
조고는 반란을 꾀하며 신하들이 자신의 말에 복종하는지 시험하고자 했다.
그래서 먼저 시험을 준비하여, 사슴을 끌고 와 이세 황제(호해)에게 “말”이라고 말한다.
호해가 웃으며 “사슴을 말이라 부르다니?”라고 하자, 신하들은 어떤 이는 침묵했고,
어떤 이는 조고에게 아부하기 위해 “말”이라 했고, 일부는 “사슴”이라 했다.
조고는 이후 사슴이라 말한 신하들을 몰래 모두 제거했다.
이 문장은 거짓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위험한 파장을 일으키는지 보여주는 명확한 기록이다.
4. 현대 사회에서 반복되는 지록위마 현상
사례 ① 정치권력과 가짜뉴스
현대 정치에서도 지도자나 집단 권력은
사실과 다른 정보를 ‘공식 발표’라는 이름으로 퍼뜨리며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
예:
- 통계 조작으로 경제 호전 홍보
- 실업률을 계산 방식 변경으로 인위적 축소
- 언론 통제와 허위 보도로 비판 여론 억제
→ 분명한 ‘사슴’을 ‘말’이라 부르고,
대중은 이를 강요당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구조다.
사례 ② 회사 내 불합리한 평가 구조
기업 조직 내에서도 윗사람의 눈치를 보며 진실을 왜곡하는 구조가 존재한다.
예:
- 분명 실패한 프로젝트인데도, 임원의 지시에 의해 “성과 있음”으로 보고
- 현장 직원들은 문제를 보고하지만, 중간 간부가 윗선에게는 “문제 없음”이라 보고
→ 결국 보고 체계가 ‘사실’을 걸러내고,
‘권력에 맞는 말’만이 진실처럼 유통된다.
사례 ③ SNS상 ‘집단 동조’와 여론몰이
SNS에서는 특정 의견이 ‘대세’가 되면,
분명히 잘못된 주장이라도 사람들이 “괜히 다르게 말했다가 공격당할까” 두려워 침묵한다.
결국 소수가 만든 거짓이 다수의 침묵 속에 ‘진실’로 변질되는 일이 벌어진다.
예:
- 허위 사실 기반의 ‘지지 운동’
- 연예인 또는 정치인 마녀사냥
-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취소’ 당하는 현상
→ 지금 이 시대의 지록위마는, 댓글창과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벌어지고 있다.
5. 심리학과 철학으로 보는 지록위마
① ‘집단 동조 실험’ – 아쉬의 실험(Asch Experiment)
1950년대 솔로몬 아쉬는
한 참가자와 다수의 연기자들이 함께 길이 비교 실험을 하는 장면을 설정했다.
연기자들이 명백히 틀린 정답을 반복하면,
참가자 역시 틀린 정답을 따라 말하는 비율이 37%에 달했다.
→ 사람들은 눈앞의 진실보다, ‘집단의 판단’에 더 쉽게 굴복한다.
② 권력에 대한 복종 실험 – 밀그램 실험(Milgram Experiment)
1961년 스탠리 밀그램은,
참가자들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라는 권위자의 지시를 따르게 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참가자 65%가 극단적인 고통을 유발할 수 있는 전기 충격까지 가했다.
→ 이유는 단 하나: “권위자가 시켰기 때문에.”
→ 조고의 명령에 침묵한 신하들은 지금도, 우리 안에 존재한다.
6. 우리는 어떻게 진실을 지킬 수 있을까?
1) ‘사슴’은 사슴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록위마의 본질은 ‘진실은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때 누군가는 용기를 내어 “이건 사슴입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조직이든, 사회든, 개인의 삶이든
거짓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늘 소수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2) 눈으로 본 것을 말하는 연습
요즘은 ‘보고도 못 본 척’하는 문화가 만연하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존재다.
자기 눈으로 본 것을 자신의 말로 표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 이것이 ‘진실의 시작’이다.
3) 권위보다 논리에 반응하는 태도
진실은 지위나 힘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사실이 결정한다.
우리가 권위자의 말에만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왜 그런가요?”, “근거는 무엇인가요?”라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
7. 마무리 요약: 우리는 모두 지록위마의 현장에 서 있다
‘지록위마(指鹿爲馬)’는 단순한 우화가 아니다.
그것은 진실이 권력 앞에 무너지는 현상,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게 되는 순간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분명히 사슴을 보고 있다.
하지만 말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그는 조고의 명단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진실 앞에 서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사슴’이라 부를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사자성어 유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자성어 유래: 망매지갈(望梅止渴) 상상이 현실을 이끄는 심리의 힘 (1) | 2025.06.28 |
---|---|
사자성어 유래: 기우(杞憂) 존재하지 않는 불안이 삶을 지배할 때 (0) | 2025.06.28 |
사자성어 유래: 연목구어(緣木求魚) 불가능을 고집하는 인간의 어리석음 (0) | 2025.06.28 |
사자성어 유래: 조삼모사(朝三暮四) 숫자의 함정에 속는 인간 심리의 비극 (1) | 2025.06.27 |
사자성어 유래: 각주구검(刻舟求劍) 고정된 사고가 불러온 어리석음의 상징 (0) | 2025.06.27 |